아프리카 스텐리 전도사의 선교비 송금을 위해 인근 은행을 방문했습니다. 은행 여직원은 구면(舊面)인지라 , 목사님 ! 오셨어요! 하며 반겨 맞아주었습니다. 은행 여직원은 스텐리 전도사에게 계속으로 송금하기 원한다면 자동으로 송금되는 통장 개설에 관한 설명과 은행 회원으로 가입하기를 권면했습니다. 이유인즉 회원에 가입하고 카드를 발급받으면 송금 수수료를 할인 받을 수 있다는 내용 이었습니다. 성도들과 후원자의 땀과 기도의 결실인 후원금을 한푼이라도 아껴보자는 취지에 카드신청서를 작성했습니다. 여직원은 해외에서도 사용이 가능하고 , 일년에 몇만원만 사용하면 카드 회원직이 유지되며 계속해서 송금수수료도 할인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몇가지 첨부 서류가 필요 했고 , 작은 메모지에 정성껏 기록해 주었습니다.
은행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팩스로 보낸후 하루 지난즈음에 은행에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담당 여직원이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명의로된 재산이 전혀 없네요, 그리고 여직원은 이것저것 꼬치꼬치 뭍고서는 카드발급이 어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유는 일정한 소득이 없고 , 소득이 없는 상황에 은행카드를 발급하기에는 위험한 일이라는 의미의 내용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목회자가 격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외국인을 목회하는 본인에게는 더욱 실감나게 느끼는 일인지라 마음이 짠 했습니다. 사례비라 정해놓았지만 , 몇 개월째 감감 무소식입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사례비를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 할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일반 교회 같았으면 성도들에게 넌지시 언지를 줄 수 있지만 , 한국문화도 이해 못하고 더욱이 교회의 문화를 이해 하기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그들에게 무슨 언지를 준다 말입니까?
그냥 아무일 없던 것처럼 슬며시 뭍어 가는 것입니다. 본인은 몇 개월째 사례비를 받지 못하고 목회를 해도 , 사역중 하나님의 감동으로 몇 번 만났다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 또한 단 한차례 선교보고서를 듣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 그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 급기야 매월 일정액의 선교비를 송금할 수밖에 없는 일이 특별한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예수를 믿고 ,제자가되고 특별히 소명받아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은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던 핵심을 늘 가슴이 품고 살아야 되지않을까요? 엘리사는 엘리야의 엄청난 능력에 매료되어 “영감을 갑절이나 더하소서”하며 그를 쫓았지만 엘리야는 “너는 내가 무엇을 구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일침으로 그를 훈련했습니다. 엘리사는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능력을 구했지만 , 엘리야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 능력의 배후에 어마어마한 고난을 감래하며 고통을 감래해야 하는 아픔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상 엘리사는 그러한 엘리야의 아픔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가난 해지셨습니다. 그 이유를 성도들을 가난을 물치치고 부요케 하기 위해서 라고 했습니다. 신용 카드를 발급받아 , 선교비 송금수수료를 할인받기를 원하는 희망이 곤두박질 했지만 , 몇 개월째 사례비를 받지 못해 생활전반에 폭격을 맞은 것 같은 , 전흔(戰痕)의 흔적이 역력하지만 , 아프리카의 새로운 비젼과 꿈을 가진 스텐리 전도사의 꿈은 결코 좌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한 두사람의 작은 정성이 모여 , 아프리카를 향한 하나님의 희망이 하나님의 소원이 하나님의 어마어마한 비젼이 , 스텐리 전도사를 통해 성취된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이역만리 먼 한국땅에서 그져 뒷짐만 지고 있을수 없을 것입니다. 주오심을 소망하며 맡기운 십자가 능력있게 감당할수 있도록 하늘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공급이 충만해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