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당신국가의 1%입니다.

0 258 2017.02.06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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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 경제성장의 동력은 파독 광부와 간호사였습니다.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 총생산(G N P)는  79 달러로  필리핀 170달러  태국 260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의 수입은  197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의 ‘종잣돈’역할을 톡톡히 해 내었습니다.  당시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은 3년간 근로계약서를 체결하고 받은 봉급의 대부분을 한국에 송금하는 것이었습니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에 근로자로 일한 광부는 무려 7,932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독일의 탄광에서 일하고 연급과 생활비를 제외한  월급의 70~90%를  고스란히 조국 대한민국에 송금했고 ,  당시 송금한  월급총액은  5,000만 달러를 상회하는  한국국민 총생산 (GNP)의 2%대를 차지하는 경이로운  공헌 이었습니다. 그런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는 그들 국가의 막중하고 중차대한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상위 1%입니다.  그들의 경제의 커다란 버팀목일뿐 아니라 그들 국가의 미래비젼입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독일로 파송된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 정부에서는 한국정부에 노임을 담보로  1억 5,000만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한국정부에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 여파로 한국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성실하게 수행할수 있었고 오늘날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입국한  스리랑카 담미카 형제는 선원근로자로 입국했습니다.  함께 배에서 근로하던 한국인 선원이 원인 미상의 죽음으로 고통이 적지 않았습니다.  선주는 갓판에서  그리고 사망한 한국인 선원과 스리랑카 담미카형제는  선창에서 함께 생활하며 고기를 잡았습니다.      어느날 갑작스런 한국인 선원의 죽음으로 꿈에도 나타나고 , 헛것도 보이고 결국 배를 탈수 없게 되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한국이 선원의 원인모르는 죽음은  배선창에서 잠을 청할수 없는 공포감으로 다가왔고 결국  배를 이탈하게 되었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입국했지만 원치않은 복병을 만나 졸지에 미등록 체류자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우선 정신 병원을 찿아 치료를 시작하고 , 출입국과 노동부를 찿아 당시 형편을 설명하고 , 체류지원에 관련해 노력한 결과 원직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쉽지 않은 시간과 과정이었지만 , 그의 꿈을 찿기 위한 노력은 어떤 장애도 넘을수 있었고  결국 원직복직이 되었습니다.  이젠 그에게 또다른 희망이 생겼습니다.  얼마간의 고통이 그를 좌절시켰지만 , 그의 마음깊숙한 곳에 있는 코리안드림은  무너뜨릴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마음안에 또다른 비젼이 생겼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통한 하나님나라의 희망 말입니다.  그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의 새꿈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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