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칼럼

RONY BUN

0 388 2017.02.0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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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NY BUN

 그는 중국계 영어교사인 아버지와 인텔리 여성 직장 매니저인 캄보디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유년시절 청소년 시절은 캄보디아 미래사회를 이끌고 나갈 필연적인 꿈이 영글어 갔고, 캄보디아 최고 영재들의 산실인 캄보디아 왕립 법대를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선린대학의 국제학교 국제경영을 전공하여 미국 유학의 꿈도 영글어 갔습니다.  입국 전 로니 형제는 캄보디아에서 한국선교사의 도움으로 성경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 선교사의 현지사역을 도와 캄보디아어로 설교 통역을 했고, 그 가운데 작은 꿈 또한 영글어 갔습니다.

 한국에서 선린국제학교를 졸업한 후 신학대학원으로 진학 한 것도 이러한 영향력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미국 유학을 포기하고 한국에서 신학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신학대학원의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 되었고, 한국어 수업이 그에게 있어서는 큰 장애로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국제학교에서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지만 신학대학원의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 되었기에 한국어 신학수업의 이해도는 40% 이하 대 이었습니다. 로니 에게 또 다시 큰 좌절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의 앞에 험산준령처럼 버티고 있는 거대한 태산은 넘고 정복해야할 대상일 뿐 이었습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비자 문제가 붉어졌습니다.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비자 때문에 출국을 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출입국에 관련된 관계 법령들을 이미 이해하고 있는 터라, 법을 어기면서까지 억지 춘양 격으로 체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판례와 현실정이 현행의 법령보다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판단되었습니다. “로니는 한국에 입국한 이후 한 번도 출입국 관련된 법령을 어기지 않고 성실하게 학업에 임했습니다. 그는 현재까지 출입국 관련해 적법한 절차로 유학했으며 앞으로도 철저한 준법으로 유학할 것입니다.” 출입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담당자들이 심도 있는 회의를 했습니다. 심사숙고하고 여러 가지를 참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중에 결정했습니다. 귀국치 않고 계속해서 한국에서 공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었습니다.

  가슴이 찡해왔습니다. 귀국치 않고 계속해서 한국에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출입국 관계자들의 진심어린 배려가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이러한 배려를 힘입은 로니의 미래를 슬며시 그려봅니다. 5년 ,10년 아니 먼 훗날 한국 정부의 배려를 알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그를 펼쳐질 캄보디아의 사역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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