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al

힌두교와 복음

0 628 2017.01.13 16:23


힌두교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에게 복음전도와 양육하는 방법 |A. 힌두교의 세계관 - 사람은 누구나 다 신이다(남아일여사상)`

1. 힌두교의 역사 및 일반적 특징 

  힌두교의 역사는 20세기 B.C. 20세기에서 B.C. 30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인더스 문명의 종교로부터 출발한다. 이 문명의 종교는 중세 이후 힌두교의 중요한 요소들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중시된다. 이어 B.C. 15세기 무렵, 인도 북서부로부터 인도로 이동한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는 아리아인(Aryan)들에 의해 이후의 힌두교가 주도적으로 형성되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아리아인들 종교의 여러 요소들이 비(非)아리안들의 요소들과 지속적으로 융합된 과정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을 크게는 슈루티(Sruti) 전통의 시기와 스므리티(Smrti) 전통의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 슈루티는 아리아인들이 작성한 <베다(Veda)> 문헌에 대한 총칭이며 그에 근거한 종교형태를 말하고, 스므리티는 <베다> 이후에 형성된 모든 종교 문헌들에 대한 총칭이며 그에 근거한 종교형태를 지칭한다.
  아리아인들의 초기 종교형태는 최초의 <베다>서인 <리그베다(Rgveda)>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자연현상을 신격화시킨 다신 숭배였다. 그러나 그 이후의 <브라마나(Brahmana)> 문헌에 이르러서는 신들에 대한 숭배로서 행해지던 희생제의 자체가 신보다 더 중시되는 제의 중심적인 종교를 형성하게 되었다. 대체로 이 시기에 인도의 유명한 사회계급제도인 카스트 제도가 확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후, 약 B.C. 9세기 경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우파니샤드(Upanisad)> 문헌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신과 인간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하는 유신론 형태에서 우주의 근원적인 실재인 브라만(Brahman)과 모든 개별적 존재의 진정한 자아인 아트만(Atman)을 동일시하는 일원론적 종교형태로 세계관의 커다란 변화를 보게 되었다.
  <우파니샤드>의 이 일원론적 실재관에 근거한 인간관과 세계관 및 구원관은 이후 인도 철학과 종교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우파니샤드 종`교는 힌두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시기에 힌두교의 주요개념이며 불교를 통해 중국, 한국 및 일본 등에까지 전파된 업과 윤회 사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생이 되풀이되는 이 윤회로부터 해탈하는 것이 최고의 종교적 목표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B.C. 6세기 경에 슈루티의 권위를 거부하면서 강력하게 도전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유물론사상, 자이나교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비아리아적인 요소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대중들의 종교요소들을 수용하여 B.C. 2세기 경부터 스스로를 재정립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 바로 스므리티 전통이다. 흔히 좁은 의미로 사용되는 힌두교는 이를 지칭하기도 한다.
  스므리티 전통에 속하는 힌두교의 종교형태들에서 몇 가지 새롭고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나게 되는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비슈누(Visnu)와 쉬바(Siva) 신이 중심이 되는 유신론의 재등장이다. 이에 따라 이들 인격신들에 대한 숭배형태인 박티(Bhakti)가 발전되었다. 또한 추구해야 할 여러 종교적 가치들을 종합시키는 성격을 띠어서 종교적 가치인 목샤, 즉 해탈의 추구와 사회적 가치인 다르마(Dharma)의 추구 사이에 상호 모순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 결과로 삶의 4단계, 카스트의 준수, 삶의 4가지 목적 등의 종교사회적인 의무규정이 확립되게 되었다. 그리고 해탈에 이르는 구원의 방법 역시 행위의 길(Kar
ma-marga), 지혜의 길(Jnana-marga) 그리고 신애(神愛)의 길(Bhakti-marga) 등,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주요 신들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종교운동이 A.D. 2세기 무렵부터 신학적인 성격을 보다 강하게 나타내는 종파로 발전하게 되는데 주요한 것으로는 비슈누 신앙, 쉬바 신앙 그리고 여신 숭배인 샥티 신앙 등을 들 수 있다. A.D. 12세기 이후 이슬람, 기독교 및 서구 문화와의 만남은 힌두교에 제 2의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슬람의 영향은 특히 두드러져서 많은 힌두교도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켰을 뿐만 아니라 A.D. 17세기 무렵에는 힌두교와 이슬람의 주요특성을 결합시켜 시크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탄생시켰고 힌두교 내에서는 박티 요소가 더욱 발전되게 되었다. 그리고 A.D. 19세기에는 서구문화에 영향을 받은 인도인들에 의해 힌두교의 개혁운동이 일어나게 되어 A.D. 19세기에서 A.D. 20세기에 걸쳐 브라모 사마즈(Brahmo Samaj), 아리아 사마즈(Arya Samaj), 신지회(神智會, Theosophy), 라마크리슈나 미션(Ramakrishna mission) 등 새로운 종교운동들과 마하트마 간디, 라마크리슈나, 비베카난다, 오로빈도 등의 종교사상가들이 등장하여 힌두교를 서구뿐 아니라 전세계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2. 힌두교의 근본 사상

1) 힌두교의 유래와 경전

  ‘힌두’(Hindu)라는 산스크리트어 용어는 지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인더스 강에서 물을 공급받는 지역인 ‘신두’(Shindu)라는 말이 와전된 것이다. 이리하여 힌두는 인더스강 지역의 사람들, 혹은 그들의 사상을 의미하게 되었다. 원래 인도에는 아리안족 이전, B.C. 3,000년경에 인더스 문명의 주인공으로서 문다족(Munda)과 드라비다족(Dravida) 등이 원주민으로 살고 있었다. 이들의 문화는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메소포타미아 및 수메르 문화와 연관되어 있으며 아리안 계통의 문화와는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리안족은 이들 원주민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혼합주의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힌두교는 특정한 창시자가 없으며 기본적으로 그 발생부터가 절충적이고 혼합주의적이어서 다른 종교의 이념을 흡수하는데 매우 빠르다. 이런 속성 때문에 힌두교 사상은 오늘날에도 과학이나 학문의 여러 영역을 흡수, 동화시키려 하고 있다. 힌두교는 정령숭배, 다신론, 일신론, 철학체계 등을 모두 포함하는 포용성을 가짐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다르마’(dharma)라는 종교 및 사회적 규범으로써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엄격히 제한한다. 힌두교의 이러한 측면은 정형화되고 엄격한 교리 체계를 가지면서도 그 실천에 있어서는 다양한 길을 열어놓는 다른 종교들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힌두교의 사상은 '스루티'(Sruti)와 '스므리티'(Smrti)라고 불리 우는 경전에 근거하여 출발한다. 스루티는 ‘계시된 것’이라는 뜻으로서 베다가 여기에 속한다. 베다(Veda)는 힌두교
최고의 경전으로서 B.C. 1500년부터 B.C. 200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으로 찬송, 기도, 의식 등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스므리티는 ‘전해지는 것’이라는 뜻으로서 스루티에 비해서 권위가 약하다. 두 개의 서사시인 라마야나(Ramayana), 마하바라타(Mahabharata), 마하바라타의 일부인 바가바드기타(Bhagavad Gita), 그리고 신화나 전설인 푸라나(Purana) 등이 스므리티에 속한다.
  힌두교의 세계관은 베다와 우파니샤드(Upanisad)에 잘 나타난다. 우파니샤드는 베다의 한부분으로서 B.C. 800년부터 B.C. 600년 사이에 형성되었는데 여러 가지 철학적인 주제들을 포함한다. 베다에서는 신들이나 영웅들의 서사시가 있으며 다신론적 신화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우파니샤드에 오면 이러한 제신(諸神)들의 배후에 변하지 않는 유일한 신이며 우주의 근원적 실재인 ‘브라만’(Brahman)이라는 개념이 나타난다. 이것은 제사나 의식을 독점하는 브라만 계급에 반발한 사람들에 의해서 우주와 인간의 근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추구되었음을 나타낸다.
  사실, 힌두교는 정형화된 교리 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여러 가지 종파 및 학파에 따라 다양한 교리와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근거를 두고 있는 모든 종교 및 철학, 사상을 힌두교라고 말할 수 있다.

2) 범아일여(梵我一如)와 동일철학

  우파니샤드에 나타나는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범아일여’라고 말할 수 있다.
‘범(梵)’은 세계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을 한문으로 음역한 것이다. 브라만은 세계의 근원이며 세계는 브라만 자신이다. 현상세계가 ‘이름과 형상’(namarupa)을 가진 차별성이 있는 개체로 보이는 것은 ‘무지'(無知, avidya)의 ‘힘’(Sakti)때문이며, 사실은 브라만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현상세계는 금으로 만든 사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물들의 이름과 형상을 아무런 의미도, 우열의 차이도 없는 ‘환상’(幻想, Maya)일 뿐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것은 오직 금 뿐이며 현상세계의 다양성은 브라만 자신의 가현(仮現)에 지나지 않는다.
  ‘아'(我)는 주관의 궁극적 실재인 ‘아트만’(Atman)을 음역한 것이다. 아트만은 인간에 내재하는 브라만이며 개별적 자아는 참된 자아가 아니다. 아트만은 개인적 차별이 없으며 모두에게 평등하며 하나이다. 개별적 자아는 무지의 영향력에 의해서 아트만이 제한적으로 나타난 현상적 자아이다. 범아일여는 ‘브라만이 곧 아트만’이라는 뜻으로, 나의 궁극적 실재와 우주의 궁극적 실재는 동일하며, 따라서 나는 우주의 궁극적 실재가 되는 것이다. 사실 힌두교 사상의 핵심은 ‘인간이 곧 신’이라는 명제 위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우파니샤드의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이 범아일여를 깨닫지 못하고 현상계에 집착하여 고통을 받는 것은 무지 때문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의 다양함은 실재의 참된 모습이 아니고 환상이며, 궁극적 실재인 브라만을 보지 못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두운 데서 밧줄을 보고 뱀으로 착각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오직 브라만만이 실재하며 그 브라만이 곧 아트만이라는 참된 지식을 얻게 되면 ‘해탈'(解脫, Moksa)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해
탈을 이루기까지 ‘윤회'(輪廻, Samsara)를 반복하며, 의지적 행위인 '업’(業, Karma)의 결과
에 따라 환생하는 세계가 결정된다. 그러므로 우파니샤드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업을 해소하여 해탈함으로써 윤회의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다.

3) 해탈에 이르는 세 가지 길

  힌두교에서는 업을 해소하여 해탈에 이르는 세가지 길을 제시한다. 먼저 ‘카르마 마르가’(Karma Marga)는 행위를 통한 길을 의미한다. ‘즈나나 마르가’(Jnana Marga)는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지식과 통찰력에 의한 길이며, ‘박티 마르가’(Bhakti Marga)는 신에 대한 헌신을 통한 길이다. 힌두교에서는 헌신의 대상으로서 많은 신들이 숭배되지만 그 중에서 특히 삼신이 주요 대상이 된다. 힌두교의 삼신(三神)은 창조자인 브라마(Brahma), 보존자인 비쉬누(Visnu) 그리고 파괴자인 쉬바(Siva)인데 이 중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숭배받는 신이 비쉬누의 화신(化身)인 크리쉬나(Krsna)이다.
  힌두교의 신관은 종교적 의식의 면에서는 다신론적 양상을 띠지만, 철학적인 면에서는 학파에 따라서 유신론적이거나 또는 범신론적으로 나타난다. 힌두교에서는 신에 대한 헌신조차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업을 해소하고 윤회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또한 힌두교에서는 도덕적 행위, 수행을 통한 지식과 통찰력 그리고 신들에 대한 헌신의 행위를 통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힌두교 사상은 불교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고통에 대한 문제 의식으로부터 출발한다. 따라서 힌두교도 고통의 제거와 절대자유의 획득을 최고의 목적으로 삼는다. 

4) 윤회(輪廻)와 영적 진화론

  윤회 사상은 인도의 전통적 내세관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도의 전통적 우주관에 따르면 이 우주는 세가지 차원의 세계로 되어 있다. 첫째는 물질 세계로서 우리 인간이 살고 있는 세계와 같은 곳이다. 그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는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는 아니지만 물질 세계보다는 좀더 나은 미세한 물질로 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차원의 세계는 순수한 정신 세계이다.
  인도 전통의 우주관은 현대의 요가 수행자들에게서도 여전히 고수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있는 요가난다는 이 세가지 차원의 세계를 현계(現界), 유계(幽界), 상념계(想念界)라고 말한다. 요가난다의 주장에 의하면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물질계인 현계이다. 인간은 현계에서 죽으면 다시 유계로 돌아가지만 현계에서 해소해야 할 카르마가 있으면 다시 현계로 태어난다. 마찬가지로 유계의 인간이 죽으면 상념계로 가지만 유계에서 해소해야 할 카르마가 있으면 다시 유계로 환생해야 한다. 그리고 상념계에서 카르마를 모두 해소하면 완전한 절대자유를 얻으며 우주와 합일하여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영혼은 윤회를 통해서 점점 순수한 상태로 진화하며 궁극적으로는 절대자유를 얻는 데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요가난다에 의하면 예수는 바로 이러한 세가지 차원의 세계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여 절대
자유를 얻고 ‘우주령(宇宙靈)’과 합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예수는 하나님, 즉 우주령의 많은 아들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수는 현계 사람들이 짊어진 카르마의 일부를 대신 짐으로써 현계 사람들이 보다 높은 차원의 세계로 상승할 수 있도록 도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이 해탈하면 우주의 궁극적 실재와 합일할 수 있다고 하는 동일철학적 사고방식을 발견한다. 즉, 윤회 사상은 ‘인간이 곧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전제로 하고 있다. 요가난다의 말대로라면 예수는 위대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구세주는 아니며 예수말고도 해탈하여 구세주 역할을 했던 사람은 많다는 것이 된다. 예수는 단지 현계의 사람들이 보다 높은 차원으로 상승하도록 도와준 것이지 모든 피조물에게 완전한 구원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종교 다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보편적 그리스도론’과 결코 다른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삼위일체 하나님 되심과 구세주로서의 유일신 그리고 구원의 완전성은 은폐되고 왜곡되어 버린다.
  윤회 사상은 인도의 순환론적 우주관을 인간의 삶에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우주가 주기적으로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는 것처럼 인간도 탄생과 죽음을 거듭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윤회 사상은 인간의 영혼이 최초에 어디서, 어떻게, 왜 생겨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회피함으로써 인간 영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은폐한다.

3. 요가 사상

1) 이원론적 요가 철학

  요가(Yoga)는 인도 종교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결합한다는 뜻의 유그(yug)에
서 유래된 요가는 일반적으로 인간과 신 또는 인간과 그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의 결합을 위해 행하는 ‘금욕적인 행위기술’ 또는 ‘명상방법’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대부분의 인도 종교 및 사상체계의 궁극적인 목표인 해탈을 위한 실천적인 수행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요가는 그 기원이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인더스 문명의 종교로까지 거슬러올라가기도 하는데 그 요가의 교리와 기술적인 긴 전통들이 B.C. 2세기 경의 인물인 파탄잘리(patanjali)에 의해 그의 <요가 스트라(Yoga Sutra)>에서 통합되어 체계화된 것이 바로 요가 철학이다.
  그는 샹캬 철학의 기본입장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상캬와 요가의 대부분의 주장들은 거의 유사하다. 핵심적인 차이점이 있다면 둘 모두 세계를 이원론의 구조로 파악하면서도 상캬가 본질적으로는 무신론의 입장에 서는 데 반하여 요가는 최고의 푸루샤로서의 이슈바라, 즉 신을 인정하는 유신론의 입장을 취한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차이점은 상캬가 푸루샤와 프라크리티를 구분할 줄 아는 분별지를 통해서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본 반면에, 요가는 분별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정신
적, 육체적인 자기 단련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명상의 실천적 가치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요가는 상캬가 그 이론적 배경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그것의 실천적 수행방법으로서 요가를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가 수트라>에 의하면 8가지 형태의 요가가 있는데 이들 모두가 나름대로의 특징을 가지나 궁극적으로는 개별적인 인간 영혼이 우주적 영혼인 신과의 결합을 추구하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요가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실천적인 명상방법이다.
  ‘요가’는 업, 환상, 열반 등의 개념과 더불어 인도 사상에 있어서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요가는 범아일여 사상을 포함하는 철학 체계이자, 동시에 이를 이론적 기초로 하여 해탈을 얻고자 하는 수행 방법이기도 하다. 이처럼 인도에서는 종교와 철학이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철학 체계는 종교적 의식과 수행의 바탕이 되었다. 그리고 철학적 탐구 자체가 해탈을 추구하는 세 가지 길 중의 하나인 ‘즈나나 마르가’에 속하는 것이다. 
 
2) 요가 철학에 대한 평가

  요가 철학은 다른 인도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인생의 ‘고통’이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요가에서 고통을 처리하는 방법은 고통 자체의 제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실재성을 부정하는데 있다. 요가에서 말하는 고통은 순수자아가 아닌 것을 순수자아로 착각한 데서 오는 무지의 소산이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상키야, 요가는 어떠한 고통도 부인하며, 고통과 순수자아와의 어떠한 관계도 제거한다.
  요가 사상은 궁극적으로 물질 세계를 부정하는 일종의 영지주의 사상이다. 요가에서 물질 세계는 인간의 무지에 의해서 존속된다. 즉, 인간의 무지는 물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발현력에 의해서 물질 세계를 전개시킨다. 따라서 우리가 무지를 깨뜨리고 순수자아를 각성할 때 물질은 원형의 상태로 흡수되며 현상계의 다양성은 소멸된다. 그러나 요가 사상은 언제부터,왜 순수자아가 혼탁한 경험 속으로 자신이 타락하는 것을 허용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배반 사건과 그로 말미암은 고통의 시작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4. 탄드라 사상

1) 성(性)과 명상

  ‘탄드라’(Tantra)는 일반적으로 ‘밀교’(密敎)라는 용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탄트라는 4세기 초에 나타나서 6세기 이후 전 인도적으로 유행한 철학적, 종교적 운동으로서, 철학자들이나 수도자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었을 뿐 아니라 서민층까지 영향을 미쳤다. 탄트라는 인도
의 철학과 종교 뿐만 아니라, 제식(祭式), 조각, 문학 등 문화의 여러 영역에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탄트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이고 전형적인 체험인 성을 초월의 매개로 삼으며 최고 신과의 합일은 오직 성적 결합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는 것으로 본다. 우리는 여기서 바알 신앙에서도 나타나는 성적 타락의 근거를 발견한다. 탄트라는 고행과 사변적인 명상을 반대하고 육체를 우주와 신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해탈은 육체로부터 시작해야 하며 강건한 육체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탄트라에 의하면 완전은 금욕적 수행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킴으로써 성취된다. 심지어 좌도파(左道派, vamacaris)에서는 의식을 통한 술, 고기, 성적 결합에 탐닉함으로써 쉬바나샥티 신과 동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성(聖)과 속(俗), 집착과 해탈의 대립을 하나로 생각하는 공(空) 사상의 애매모호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탄트라가 가지고 있는 성적 타락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탄트라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성행위가 아니다. 탄트라의 성취는 ‘만달라’(mandala)라는 음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의식과 연관되어 있다. 만달라는 원형, 삼각형, 사각형 등의 복잡한 디자인을 가진 도상으로서 명상을 위한 지지물(支持物)이다. 만달라는 우주를 상징하는 것이며 수행자는 도상이 관장하는 우주적 차원으로 자신을 옮겨놓고 그 도상과 융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자신의 세속적 세계에서 벗어나 신들이 지배하는 세계로 들어간다.
  탄트라 사상에 의하면 우주는 색채이며 형상이며 소리이다. 따라서 신성의 각 차원과 단계에는 그에 상응하는 상(像)과 색(色)과 문자와 소리가 있다. 그러므로 어떤 차원을 상징하는 색채나 음향에 관한 명상을 통해서 수행자는 특별한 신성의 존재양식 속으로 들어간다. 또 인체의 미묘한 기관들과 만트라의 신비한 글자 및 음절 사이에는 불가사의한 상응관계가 있는데, 그 상징을 작동함으로써 그 상징에 상응하는 모든 에너지를 일깨운다는 것이다.
  만트라(眞言)는 그 각각이 표상하는 신이 있는데 수행자는 만트라를 규칙에 맞게 음송(吟誦)함으로써 신의 본질을 전유하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그 신에 동화하는 것이다. ‘옴’은 베다의 시기로부터 그 가치가 알려져 있는 최고의 만트라이며 브라만이나 신들과 마찬가지
로 동등한 자격과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만트라는 무한한 힘을 가지며 최고의 지혜를 얻게 해준다. 만트라는 가장 극악한 죄도 소멸시킬 수 있으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모든 초능력을 획득하게 해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경이 진언하지 말라고(신 18:10-11) 경고한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트라는 귀신들을 부르는 진언이기 때문이다.

2) 신(神)의 몸을 만드는 법 

  탄트라에서는 육체를 고통의 근원이 아니라 해탈의 도구로 보기 때문에 인체(人體)를 신체(神體)로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탄트라는 하타 요가 및 인도 특유의 신비적 생리학과 연관되어 있다. 인도의 생리학에는 중국 의학에서의 경락, 경혈과 같이 해부학적으로 파악되지 않는 기관들이 있는데, ‘나디’(nadi)와 ‘차크라’(cakra)가 그것이다.
  육체는 일정수의 ‘나디’라고 하는 맥관(脈管)들과 ‘차크라’라는 중심들로 되어 있다. 생명
에너지는 숨의 형태로 나디를 통해서 순환하고 차크라 속에 잠복해 있는데, 수행하지 않는 자의 나디는 혼탁하고 막혀 있다. 나디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 중에서 ‘이다’(ida), 해를 상징하는 ‘핑갈라’(pinggala), 달을 상징하는 ‘수숨나’(susumna)가 중요하다. 차크라는 그 수가 매우 많지만 그 중에서 7개의 차크라가 중요하다.
  또 차크라에는 여신 혹은 뱀으로 상징되는 ‘군달리니’라는 에너지가 있는데, 하타 요가를 통해서 잠자고 있는 군달리니를 일깨움으로써 해탈의 문을 연다. 군달리니는 최고의 진언인 ‘옴’과 동일시하므로, 군달리니를 일깨우기 위해서는 ‘옴’이라는 만트라와 함께 ‘무드라’(mudra)라고 하는 신체적 동작을 통한 호흡법으로 시작한다.
  군달리니를 활성시키는 데는 무드라 뿐 아니라 ‘마이투나’(maithuna)라고 하는 성행위를 하는데, 이때 호흡과 의식, 정액을 움직이지 않게 해야 한다. 군달리니가 깨어날 때 모든 차크라는 군달리니에 의해서 관통되는데, 군달리니가 관통되는 부분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리하여 군달리니가 머리 곡대기의 ‘사하스라라 차크라’(sahasrara cakra)까지 상승하면 쉬바(Siva)신과 합일된다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대우주인 세계와 소우주인 인간이 밀접한 상응관계를 가진다고 생각해왔다. 따라서 대우주의 상징인 만달라와 인체의 구조로서의 차크라 그리고 성스러운 건축물인 사원은 동일한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사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만달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차크라를 통한 군달리니의 통로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만달라 속으로 그리고 사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된다. 여기에서 인체는 하나의 만신전(萬神殿)이 되는데 그것은 매우 재미있는 면을 시사해준다. 성경은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하지만(고전 4:16) 탄트라에 의하면 우리의 몸은 만신들의 성전, 즉 귀신들의 집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탄트라는 신성(神聖)에 맞는 신체(神體), 즉 생성과 사멸에 종속되지 않는 금강신(金剛神)의 획득을 목표로 한다. 탄트라에 의하면 수행자의 이상은 현생에서 몸을 가지고 해탈하는 것이다. 사후에는 해탈이 없으며 육신을 영구히 살아있게 하기 위해서는 호흡법을 배워야 하고 금(金)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약제와 주문에 의해서 청동을 금으로, 은을 금으로 바꾸려 하는 연금술이 발달하였다.

5. 암소 숭배

  암소를 신성시하여 보호하는 관행은 힌두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하고도 독특한 요소이다. 그래서 간디는, 암소 보호가 모든 힌두교도들의 공통되는 믿음이며 힌두교와 다른 종교들을 구분하는 것이 바로 암소 숭배라고 말하기도 했다.
  힌두교도들은 암소 자체는 물론 암소로부터 나오는 것들, 즉 우유나 뻐터 그리고 오줌과 쇠똥까지도 신성시하여 암소의 살해를 절대적인 금기로 삼고 있다. 이러한 암소 숭배는 힌두교의 신들과 관련된다. 암소 몸의 모든 부분이 신들의 거처라고 믿어져서 꼬리끝털 부분
에는 야마(Yama)신이, 콧구멍에는 쌍둥이신인 아슈빈(Asvins) 등이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후기 힌두교의 주요한 세 신들과 관련되어 신성시되는데 힌두 신화에서 쉬바가 타고 다니는 것으로 묘사되는 암소 난디(Nandi)는 독자적으로 숭배를 받고, 비슈누의 화신(化身)인 크리슈나도 암소와 관련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또 암소는 브라마 신과 같은 날에 창조되었고 암소 살해는 사제계급인 브라만을 죽이는 죄와 같다고 믿어졌다.
  소를 신성시하는 관행은 인더스 문명의 종교에서부터 발견된다. 그러나 암소보다는 정력과 힘의 근원인 황소가 신성시되었고 초기 아리아인들 시기에서도 암소에 대한 숭배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다 베다 시기에 이르러 우유와 버터를 제공해주고 중요한 노동력인 황소를 낳아주는 암소가 특별한 가치를 지니는 것으로 인식되게 된 듯하다. <리그베다>에서 암소는 아그냐(aghnya, 살해할 수 없는)로 언급되는데 이는 주로 젖소에 대한 살해 금지였고 황소나 암소들은 종교 또는 공공의 이유로 살해되기도 해서 특히 인드라에게는 많은 소 희생제의가 바쳐졌다. 그러나 이후 시기에 동물보호를 위한 특별한 규정들이 세워지게 되고 암소 살해가 엄격히 금지되었다. 암소 숭배가 힌두교에서 비중 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 때는 기원후 초기 세기들에서이고 푸라나 시기(B.C. 6-7세기)에 보다 더 강화되었다.
  아주 최근까지도 암소를 살해한 자는 캬슈미르에서 사형에 처해졌다. 또 금세기에는 돼지를 신성시하고 반대로 쇠고기를 먹는 무슬림들에 의한 암소 살해가 과격한 지역폭동을 초래해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심각한 종교분쟁을 야기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6. 현대의 인도 사상

1) 인도 사상의 부흥

  이슬람의 침입으로 인도에는 16세기 중반부터 무굴제국이라는 이슬람 왕국이 세워지는데, 이 결과로 인도는 정치, 사회, 예술, 철학, 종교 등 모든 부분에서 이슬람과 교류하고 이슬람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근대 이후로 오면 힌두교는 서구 사상과의 접촉에 의해서 영향을 받으면서 현대화 된다. 인도에서 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세워진 것은 A.D. 1600년인데, 실질적인 영국의 통치는 1757년 프랏시 전쟁을 계기로 하여 프랑스를 몰아냄으로써 시작된다. 그리고 1849년 세포이 반란을 계기로 무굴 왕조는 멸망하고 인도는 영국의 직할 식민지가 된다. 영국의 지배 하에서 인도는 정치, 사회, 철학,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 이슬람의 통치 시대에 받은 영향보다 더욱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 
  힌두교 사상은 서구로부터의 영향을 받는 한편 오히려 역으로 서구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는데, 우퍄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 등의 힌두교 경전들은 서양의 인도학 연구자들을 흥분시켰다. 쇼펜하우어도 우파니샤드 등 인도 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미국의 에머슨, 소로우, 휘트먼 등 초월주의자들도 인도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서양의 학자들은 인도의 문학, 논리학, 수학, 형이상학, 인식론, 회화, 건축, 공예 등 다방면에서 인도 문화의 탁월함에 매료되었다.
그리하여 서양의 인도 연구자들은 인도의 경전들을 번역하고 편집하고 주석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 결과 이제 힌두교 사상은 결코 고전에 속하거나 고고학적 유물이 아니며 더 이상 인도라는 곳에 국한되어 있지 않게 되었다. 이제 힌두교 사상은 현대의 옷을 입고 오늘날 전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강력한 사상이 되었다. 

2) 서양인의 ‘스승’(Guru)들

  서양에서 인도 사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분위기를 타고 인도의 현대적 요가 수행자들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 상륙하여 그들의 ‘신비하고’ ‘고상한’ 가르침을 베풀기 시작했으며 많은 서구인들이 그들의 가르침에 매혹되었다.
 
  (1)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 1895-1987)는 한때 애니 비잔트(Annie Besant)에 의해 새로운 시대의 메시야로 지목되어 신지학회(神知學會)회라는 단체를 이끌었지만 1929년에 신지학회에서 탈퇴한다. 그의 주장은 참된 자아의 발견, 의식의 개혁, 내적 혁명 등의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모든 이념이나 조직화된 종교, 여론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는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자유를 추구한다. 크리슈나무르티에 의하면 진리는 길이 없는 곳이며, 인간의 어떤 조직이나 경전, 혹은 어떤 종교의 성직자나 의식, 어떠한 형태의 철학적 지식이나 심리적 기술을 통해서도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절대적인 자유이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이러한 사상은 어떠한 수행 방식도 가지지 않은 불가지론적 사변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2) 마하리쉬 마헤쉬(Maharish Mahesh)는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의 창시자인데, 알라하바르 대학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전공하고 구루데브(Dev)의 문하에서 12년 동안 공부하였다.
  마하리쉬 마헤쉬는 삼라만상 속의 모든 힘과 물질에 공통된 하나의 통일장이 있다고 보고 초월명상은 이러한 통일장을 느끼게 해준다고 주장한다. 그의 수행 방식은 소리의 진동을 일으키는 만트라 요가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마하리쉬는 초월명상을 통해서 창조적 지성을 발휘시켜서 자연법칙에 맞는 생각과 행동 능력을 배양할 수 있으며, 집합의식 속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여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

(3) 라즈니쉬(Bhagwan Shree Rajneesh 1931-1990)는 인도의 자이나교 집안에서 출생하여 1953년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1958년 자발푸르 대학에서 철학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70년 인도의 봄베이에서 바가다드기타를 강의한 이래 성경(星鏡), 요가(Yoga), 불경(佛經), 노자(老子), 장자(壯子), 열자, 수피(Sufi), 선(禪) 등 동서양의 사상들을 강의해왔다. 라즈니쉬의 사상은 요가와 탄트라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모든 종교의 갖가지 수행법과 명상법을 다 수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뉴에이지 사상의 전형에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즈니쉬의 명상센터는 세계 20여 개국에 설치되어 있으며, 미국의 오레곤주에도 라즈니쉬의 명상센터가 있다.

  (4) 요가난다(Paramahansa Yogananda 1893-?)는 인도의 고락푸르에서 출생하였으며, 구루 스리 유크데스와에게서 고대의 크리야 요가(하타 요가)를 배웠다. 그는 1920년 에 보스턴의 국제 자유종교협의회에 참가하여 요가를 널리 보급하였으며, 1925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자아실현동지회(SRF)를 설립하여 강연과 저술을 통해서 그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그는 요가의 사상에 입각하여 명상을 통해서 우주와 합일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모든 만물은 오직 유일한 실체인 신으로 동등하게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동일철학을 전파하였다.

7. 힌두교의 배후 사상

  현대의 힌두교 사상들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전 1 : 9). 그것은 다만 과거에 이미 있던 것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적용한 것일 따름이다. 현대의 힌두교 사상가들은 다른 종교나 사상을 수용하고 해석하기도 하고, 서구의 철학이나 심리학을 인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마치 사상사나 과학사를 꿰뚫고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심취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 사상의 배후에 동일하게 깔려 있는 것은 ‘인간이 곧 신’이라는 사상이다.
  ‘인간이 곧 신’이라는 주장은 창세 이후로부터 사단이 인간에게 꾸준히 속삭여온 거짓말이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이 될 수 있는 존재인데, 하나님이 인간을 질투하고 속이고 협박하여 인간을 낮은 피조물의 상태로 둔다고 사단은 계속해서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단은 인간에게 유익을 주는 참된 하나님은 사단 자신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뉴에이지의 핵심부에서 루시퍼를 하나님으로 숭배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마치 희랍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처럼, 루시퍼야말로 인간에게 참된 유익을 가져다준 존재라고 하는 생각은 뉴에이지 운동이나 라에리안 운동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상들이 모두 힌두교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한다.


B. 복음전도와 양육하는 방법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힌두교세계관을 고려한 기독교 선교를 해야 한다. 현재 전세계의 복음화를 위해 힌두권은 하나의 큰 장애물이다. 수 많은 신들을 숭배하는 어둠에 속한 영혼들이 참된 하나님께 예배하며 돌아오게 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와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된다. 따라서 성령에 의한 적절한 선교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럼 인도에서의 선교적 장애요소를 보고, 선교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1. 선교의 장애 요소

인도의 선교는 이미 사도 도마에 의해서부터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세는 미미하며, 전도된 사람들은 대체로 하류층에 집중되어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1) 사회, 문화적 요소
로잔 세계 복음화 위원회는 힌두교 선교의 사회, 문화적 장애요소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힌두교의 종교적 감정과는 너무 상반되는 예를 들면, 쇠고기를 먹는 것과 같은 기독교인들의 음식 습관이다. 둘째, 비인도적 기독교 예배 방식. 셋째, 신자의 가정과 교회 호라동에서 너무 과도하게 남녀 학생이 섞여 있는 것이다. 넷째, 기독교는 이마에 주홍색 점찍는 것을 금지한다. 다섯째, 기독교가 외국 종교로 보인다. 여섯째, 기독교는 인도 문화와 정체성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일곱째, 기독교는 애국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덟째, 기독교는 불가촉천민 만이 믿는 종교라는 생각이다. 아홉째, 카스트 계급 제도의 영향 등은 기독교 복음을 수용하는 데 있어서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힌두교인들은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서 그의 도덕성은 존경받을지라도 신성은 부인한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선교의 높은 장벽이 되고 있는데, 인도에는 약 6,400 카스트가 있다고한다. 최고 카스트는 4.9%로 브라만, 승려 카스트계층이다. 상류 카스트는 10.5%로 크샤트리아, 바이샤, 하류 카스트는 47.6%, 천민 카스트는 15%로 불가촉천민, 하리잔으로 알려졌다. 카스트의 차별대우는 헌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 차별은 여전하다. 기독교로 개종하면 공동체로부터 축출, 가족들의 경제손상, 결혼의 어려움, 폭력과 박해 등 많은 사회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어 있다.

2) 정치적 요소
인도 신학자 로빈 보이드는 기독교 역사상 세 가지의 큰 충돌 세력에 대해 언급하는데, 유대문화가 첫 충돌이고, 야만주의, 애니미즘, 회교가 둘째이며, 셋째는 힌두교라고 했다. 특히 힌두교의 과격성과 위험성은 심각하다. 최근 카슈미르의 회교도 독립운동과 같은 정치상황은 선교에 불리하다.
인도정부는 힌두교가 종교가 아닌, 국가의 생활 양식이며 문화라고 법적으로 정의를 내림으로 은연중에 인도와 힌두교를 동일시하려고 한다. 비록 종교의 자유가 있지만, 실제로 다른 종교로의 개종을 막는 것이다. 심지어 선교사 입국은 불가능하며, 몇 몇 주에서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2. 혼합주의에 대한 대응

힌두 신관의 종교적인 특징은 다양성, 혼합성, 그리고 관용성이다. 즉 구원에 이르는 다양한 길들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종교에 대한 이런 관용적인 입장은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현대 힌두들의 일반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1) 현대 혼합주의 운동 중에 사마지 운동이 있는데, 이것은 람 모한 로이(1772-1883)가 결성했다. 이 운동은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브라만을 기독교의 유일신 하나님과 동일하게 보고, 힌두교의 우상숭배와 다신 숭배, 화신설도 배척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도 화신설 중의 하나로 간주하며 삼위일체론을 배척했다.
로이는 예배시에 베다, 우파니샤드, 성경, 코란을 다 사용하여 어떤 종교든지 유일신을 존경하고 예배하면 되다는 관용주의를 취한다.

2) 라마크리슈나 (1836-1886)는 그의 사마지(황홀경)의 경지에서 유신론과 범신론을 하나로 혼합한 혼합주의의 완성자이다. 그는 모든 종교를 하나로 보았다. 그는 모든 화육은 브라만에 근거를 둔 동질적 성격을 가지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도 크리슈나, 라마 등과 같이 브라만의 하나의 현현으로 보았다.

3) 비베카난다(1863-1902)는 라마크리슈나의 제자로 모든 종교들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타인이나 타민족의 종교를 비방하거나 개종시켜서는 안된다고 했다. 그는 성육신, 삼위일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지만 기독교 외에 참다운 종교가 없으며 기독교 외에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고 하는 배타적 주장만은 수용할 수 없다고 했다.

4) 간디(1869-1948)는 로이처럼 기독교를 윤이적인 관점으로 받아들이면서 바울적 기독론이나 속죄론을 모두 배척했다. 부활을 환각으로 보았고, 예수만 성육신하지 않았다고 했으며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했다.

대체로 현대 힌두 사상가들은 기독교의 하나님을 브라만과 동일시했고, 예수를 그들의 화신들 중의 하나로 보편화시켰다. 따라서 이런 혼합주의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은 하나님이 브라만과 다르며, 삼위일체의 하나님의 유일성과 절대성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이들에게도 삼신일체가 있다. 즉 창조신 브라마, 유지신 바쉬누, 파괴신 쉬바이다. 그러나 이런 신들은 모두 힌두교의 다신교 신앙을 범신론 사상으로 통일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이들은 창조를 믿지 않는다. 누가 무에서 유를 창조했는지 아느냐고 반문한다.

3. 화신사상에 대한 변증

인도인들은 성육신을 인도에 나오는 화신들 중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의 화신사상은 사실보다 신화와 전설에 근거하며, 또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주님의 성육신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여러 번 재생해 왔다고 말한다. 그들은 예수그리스도나 크리슈나, 붓다를 모두 동일하게 자격을 갖춘 하나님의 성육신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류 역사상 하나님은 단 한 번 육신으로 오셨고, 선생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대속제물이 되기 위해 오셨다. 또 주님은 다시 재림하시어 세상을 심판하실 분이시다.
복음에는 막연하거나 애매한 것이 없다. 복음은 역사적 사실에 견고한 바탕을 두고 있다.

힌두교와 신도를 제외한 모든 종교에는 설립자가 있다. 그러나 비록 설립자가 있다고 해도 예수님의 유일성에는 비교할 수 없다. 주님의 독특한 탄생, 무죄하심과 대속, 부활의 승리, 승천, 재림 들은 유일하다. 기독교의 성육신은 힌두교의 화신과 다르기에 배타적이다. 진리이기에 배타적이 아닌가?

4. 토착화 선교 전략

1) 인도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생각한다. 더구나 오랜 식민지 통치가 있었기에 배타적이다. 그러기에 힌두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인도인들의 생활 양식을 고려한 선교적 접근이 시도되어야 한다. 즉 의상, 건축형태, 예배형태, 결혼식, 장례식, 노래 등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2) 그리고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특별히 ‘용어’의 선정이 중요하다. 성경에서 쓰는 용어와 그들이 이해하는 용어들간의 차이와 일치점들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3) 복음의 대상에 대한 접근 방식도 고려해야 한다. 인도는 카스트 중심의 계급사회이다. 그리고 수 많은 계급과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개인의 의견이나 결정보다 집단, 공동체의 영향력이 우선되고 중시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선교전략도 가족이나 부족단위의 공동체 중심으로 세워져야 한다. 라투렛은 인도인들이 종교와 비종교의 문제도 집단으로 처세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했다.
맥가브란의 교회 성장 이론인 동질집단의 원리, 집단개종은 인도의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집단개종에는 중생의 체험이 없는 경우가 있기에 제대로 ‘양육’해야 하는 사후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양육방법은 성경에 근거한 내용으로 하면 된다고 본다.
결국, 인도의 선교는 직접 달려들어가 전하기보다는 그들의 문화를 십분 이해하고 나서 선교를 해야 할 것이다.
4) 특히 인도에서 카스트의 구조 속에서 억압받고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불가촉천민들과 여성들에 대한 인권신장 문제등은 복음의 역동적인 영향력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기술을 익히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5. 선교 메지지의 접촉점

선교에서는 접촉점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겠다. 기독교의 절대진리는 모든 다른 문회를 복음화시킬 능력이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사도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듯이 힌두교인들이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개념을 접촉점으로 해서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1) 신관에 대하여 : 브라만과 하나님을 비교하면서 전하는 것. 힌두의 신관과 기독교의 신관의 비교도 좋은 접촉점이 된다.  힌두인들의 신들은 인도의 오랜 역사를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이런 신들에 의해 인도사회는 계급화되고 구속되어 왔다. 이들의 신들은 그들의 철학과 문화 속에서 산출해 낸 인도의 신들이며, 이것들은 그들의 종교성의 반영이다.

2) 구원에 대하여 : 힌두는 인간의 묵상과 실천, 자기 자제를 통해 열반에 이르지만 기독교는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된다.

3)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 힌두는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많은 아들 중의 한 사람으로 보았고, 그는 독생자가 아니며 다른 사람보다 신성함이 없고, 인간의 죄를 위해 죽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주님은 독생자로서 양성론을 가지시고,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

4) 인간에 대하여 : 힌두교는 수직적인 인간관이지만 기독교는 수평적이다.

5) 죄에 대하여 : 힌두는 선과 악은 상대적인 어휘이며 무엇이든지 돕는 것은 선이며, 무엇이든지 방해하는 것은 악이다. 사람이 자기 스스로를 알기 위해 이 장해물들을 ‘거치지’ 아니할 수 없다. 사람이 현생에서 성공치 못하면 환생시 또 다시 노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죄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키는 교만하고 독자적인 반항이며, 하나님의 표준에 이르지 못한 것을 죄라고 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하나님과의 교제단절이라고 한다.

6) 세상에 대하여 : 힌두교는 세상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라고 믿고 있으며, 이 세상도 구속의 날에 완성된다고 보고 있다.

7) 종교적 삶에 대하여 : 힌두교의 자아부정과 세상 포기와 기독교의 제자도,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그리고 신에 대한 충성과 봉사를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으로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삶 속에 나타난 문화나, 신에 대한 그들의 태도들에 어긋하는 행동들은 조심해야 한다.

8) 명상과 묵상 : 다르지만 접촉점이 될 수 있다.

9) 실제적인 필요충족 : 어느 나라든지 ‘죄 용서, 평화와 안전, 치유’들은 모든 사람들의 직접적인 문제이다. 그러기에 힌두의 신관을 앎으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타세계관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능력전도’가 필수적이다.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은 함께 능력과 기적으로 역사하셨다고 하셨다. 이것에 대해 믿음을 가지고 실제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능력’을 통하여 전해야 한다.

10) 사회복지를 통하여 : 고아원과 같은 시설과 기독교 학교 설립, 기독교 병원, 기독교 회사, 구제와 같은 것들을 통해 접촉을 할 수 있고, 현재 이런 선교사역이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고 본다.

11)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선교사 자신이다. 선교사의 삶이 본이 되면 가장 훌륭한 접촉점이 된다. 주님처럼 사람들은 존귀히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그런 태도는 큰 감명을 준다.

12) 선교 커뮤니케이션을 잘 배워서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는 가운데 힌두사람들 모두가 동일한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세계관들을 갖고 있기에 그들에  맞는 접촉점들을 시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좋은 방법은 힌두교에서 개종한 사람들을 제대로 훈련을 시켜서 그들로 복음사역을 하도록 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본다.

13) 배타성의 장점과 진리를 적극활용해야 한다. 그들은 다양성, 관용성을 주장하고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했지만, 유일성의 중요성을 피력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  왜냐하면, 기독교만이 진리이고, 예수 이름을 믿는 것 외에 다른 구원을 얻을 만한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종교를 하나 더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주는 것이다.

14) 기타

<참고도서>

세계종교사 입문, 한국종교연구회 지음, 청년사, 1991
인도인의 길, 존M. 콜로, 허우성 역, 세계사, 1995
세계종교의 이해, G.W. 브라스웰, 권혁봉, 요단, 1986
세계의 종교, 휴스톤 스미드, 이종찬, 은성, 1993
세계의 종교와 관습, 제임스 F. 루이스; 위리엄G. 트레비스, 엄성옥; 박경환, 은성, 1995
선교커뮤니케이션론,  데이비드 헤셀그레이브 지음, 강승삼 교수 옮김, 말씀사, 1999
능력전도, 존 윔버 지음, 이재범 옮김, 나단, 19988
무엇이 다른가?  프릿츠 리데나워 편, 말씀사, 1971
인도선교를 위한 힌두 신관 연구, 채희철(석사논문, 아시아연합신대)

<용어해설>
라마 : 비쉬누신의 7번째 화신
리그베다 : 가장 오래된 베다경
바가받기타 : 신의 찬가
바이샤 : 힌두쿄의 셋째 카스트
박티 : 신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박티 마르가 : 헌신을 통해 신과 합일하는 방법
베다 : 브라만교의 가장 오래된 경전, ‘계시’
베단타 : 베다 경전의 끝부분
브라마 : 힌두교 3억 3천만 신들 중의 ‘창조신’
브라만(Brahman) : 비인격적인 절대자, 포괄자, 대우주, 대아
브라만(Brahmane) : 힌두교의 최상급 카스트
브라마사마지 : 근대 힌두교 혼합주의 운동 중의 하나
비쉬누 : 힌도교의 유지신
사두 : 인도의 승려
사마디 : 정신통일 통해 망념을 벗어난 상태, 신적 대상과의 합일상태
삼사라 : 윤회적 현상세계
샥티 : 배우자, 여신
수드라 : 힌두교의 넷째 카스트
쉬바 : 힌두교의 파괴신
스와미 : 영적 스승
아나타 : 무아, 비아
아드바이타 : 무이, 불이, 일원론적 포괄자
아바타르 : 신의 화신
아트만 : 사람 속에 내재한 브라만, 인간의 참 자아
업 : 행위의 대가, 미래 행위의 원인
열반 : 불어서 끔, 멸아, 번뇌의 속박에서 벗어남, 열망과 근심에서 자유함
요가 : 분별심을 극복하는 기술
우파니샤드 : 베다의 마지막 부분인 철학사상
카르마 마르가 : 행업을 쌓아 해방되는 방법
크리슈나 : 비쉬누신의 여덟 번째 화신/ 열 번째는 칼키
크랴드리아 : 힌두교의 둘째 카스트
탄트라 : 밀교 경전
파리아 : 최하층 카스트, 불가촉민
해탈 : 속박으로부터의 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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