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부모, 친척들과 함께 잘 살아갈 줄 알았어요. 하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됐네요.”
박해를 피해 한국에 온 파키스탄 크리스천인 라시드(38)씨는 지난 29일 기자와 만나 고향을 ‘탈출’한 사연을 들려줬다. 그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창문 밖을 보며 가족 생각을 한다고 했다.그에게 어려움이 닥친 건 2009년 8월이었다. 기독교인 친구였던 대니시가 무슬림 여성과 사귀면서부터다. 여성의 가족은 딸이 기독교인 남자와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이슬람 성직자에게 신고했다. 성직자는 이어 그가 코란을 모독했으며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욕했다고 발표했다. 파키스탄에서 기독교인 남성과 무슬림 여성 사이 결혼은 불가능했다. 성난 무슬림들은 대니시에게 달려가 가족과 교회를 공격했다. 대니시는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고 3일 후 의문의 죽임을 당했다.
장례도 순탄치 않았다. 탈레반과 연계된 과격주의자들이 장례식을 방해했다. 과격주의자들은 대니시를 도왔던 친구들까지 위협했다. 대니시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켰다는 이유에서였다. 라시드는 이들 친구 중 한 명으로 과격주의자의 표적이 됐다. 그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고향을 등지기로 했다. 결국 2개월 후인 2009년 10월 한국에 도착했다. 펀잡주 출신인 그는 고향에서 꽤 잘나갔다. 크리스천으로는 드물게 대학 교육과 유학도 다녀왔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항공사 직원으로 일하며 전 세계를 다녔다. 하지만 이제 그런 호시절은 끝났다. 그를 기다리는 건 증오에 찬 과격주의자들이다. 만약 지금 고향으로 돌아간다면 그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없다. 이 때문에 얼마 전 난민신청을 했다.
“파키스탄 기독교인은 소수자로 살아갑니다. 크리스천은 지정된 구역 안에서 살아야 하고 2등 국민, 하층민으로 전락합니다. 가난한 현실이 교육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만들고 회사에 들어가더라도 진급하기 쉽지 않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지만 현실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기독교인끼리 뭉쳐 살지 않으면 힘든 상황입니다.”무엇보다 파키스탄 기독교인의 발목을 잡는 것은 ‘신성모독법’이다. 코란이나 무함마드를 모독하면 최대 사형까지 가능하도록 한 이 법은 현지 크리스천들에겐 악법이다. 친구 대니시 역시 이 죄목으로 죽임을 당했다. 한 여성을 사랑했다는 이유로.
살만 타시르 펀잡 주지사 역시 이 법을 폐기하려 했다가 지난 1월 암살 당했다. 그는 무슬림이었지만 과격주의자들의 타깃이 됐다. 파키스탄 유일의 크리스천 장관이었던 샤바즈 바티 소수민족부 장관도 신성모독법 폐지를 위해 활동하다 지난 3월 사망했다.라시드씨는 한국에 도착해 영어 아르바이트 등을 하다가 최근에는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파키스탄 크리스천은 국내 거주 파키스탄인 중에서도 소수다. 20명 안팎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