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두 번째 함박눈 세례를 받았다. 온천지가 하얗게 변했다. 가지에 피어난 눈꽃은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힌다. 환한 눈꽃 마냥 우리 마음도 환하게 되었으면 소망해 본다. 엄동설한 맹장군의 기를 꺽은 소한(小寒)이 지나고 봄의 문턱인 입춘(立春)이 우리 곁에 슬며시 다가와 있다. 봄은 생명의 탄생과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올 들어 첫 번째 아기가 울음을 터트렸다. 예정보다 두 주간 정도 일찍 태어난 것이다. 순산을 위한 기도의 응답일까 ? 예정보다 일찍 출산케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경이로움 그자체가 아닐까 ? 정말 애를 낳았을까 ? 할 정도로 건강한 산모의 모습에 순산의 응답은 더욱 실감이 난다.
목요일 오후 새 생명 탄생 축하차 산부인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큰 아이가 동승했다. 큰 아이는 병원 근처 학원에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었고 심방 가는 아빠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동생을 자신의 렛슨현장에 억지동행 시켰다. 그러나 차에서 내린 동생은 조변석개(朝變夕改)마냥 금세 마음이 변했다. 그리고 엄마 품으로 줄행랑을 쳤다. 이에 질세라 언니의 설득공세는 시작되었고 동생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갖은 양념을 다 첨가했다 . 언니의 끈질길 설득에 동생은 다시 차에서 내린다. 그러나 또다시 마음이 돌변해 이내 자동차로 달려온다. 옥신각신하는 가운데 아내는 작은 아이가 언니를 따라 간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자동차 문을 닫아버렸다. 순간 악~하며 작은아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의 손가락이 자동차 문틈에 끼인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급하게 자동차 문을 열어젖히고 문틈에 끼인 아이의 손을 빼내었다. “ 아니! 당신은 뭘 보고 문을 닫는 거요!” 현장을 수습하기 보다는 소리를 지르며 화를 벌컥낸 것이다. 아이의 손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이의 손은 작고 가늘고 부드러워 뼈는 이상이 없는 듯 움직임에 자유로웠다. 자동차는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차안 분위기가 어수선하고 냉랭했다. 아내는 아무런 말없이 죄인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린 것이다. 탄생한 아기를 축하하려고 꽃다발을 선물했지만 그 꽃에는 더 이상 향기가 나지 않아 꽃향기를 맡을 수 없었다.
심방후 홀로 교회로 갔다.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아내의 부주의 이었지만 실수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 상황에 아내를 향해 고함을 지른 목사된 못된 모습이 참 부끄러웠다. 좀 더 그 상황을 인내하고 ,찬찬히 살피고 , 수습해야 될 터인데 목사된 자로 인격이 의심 되는 순간이었다. 참 부끄러웠다. 목사가 된 이후 늘 성도들에게 사랑하라 인내하라 용서하라는 가르침을 제시하고 , 교훈하지만 실제 삶속에서 본이 되지 못함이 부끄러웠다. 만일 실수한 사람이 아내가 아닌 권사님이나 집사님 같았으면 그렇게 소리를 높여겠느냐는 것이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목사의 아내는 곁에서 희생하고 수고하고 소리 없이 뒷치닥거리를 다~했는데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 너무 쉽게 대하지 않았느냐 는 것이다. 아내 또한 목회자의 위치에서 볼 때 섬겨야할 한 영혼이고 인격체인데 너무 쉽게 대하고 또 너무 쉽게 대하다 보니 아내의 입장은 생각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까울수록 더욱 인격적이고 , 더욱 조심하고 , 함부로 말하지 말고 , 더 존경하고 더 사랑하고 더 아껴야 하지 않을까 ? 인근에 위치한 대형마트에 아내와 쇼핑을 갔다. 밸런타인데이가 가까웠는지 광고로 북새통을 이룬다.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 밸런타인데이는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 하는 날 맞죠?” 미소 머금은 아내의 공세가 시작된다. " 우리 집에는 남자가 없어요! 목사님만 있고요 " 미안한 마음을 담아 밸런타인데이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