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위를 떨치던 동(冬)장군 소한(小寒)이 겨울의 가장자리로 사람들을 몰아간다. 대한(大寒)이 소한(小寒)의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소한(小寒)이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 말을 무색케 할 정도로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그러나 멀잖은 곳에 봄의 문턱인 입춘(立春)이 자리를 잡고 기지개 펼 준비를 하고 있다. 한해의 계획은 년 초에 한 달의 계획은 월초에 하루의 계획은 이른 아침에 세우듯 새해 기지개를 활짝 펴고 한해 펼칠 계획을 소망하며 거룩한 성산(聖山)에 오른다.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나의 하나님 영원 무궁히 지키시리로다 ' 는 시편기자의 심정을 품고 말이다.
한걸음 한걸음 성산을 향한 발걸음은 송골송골 이마의 땀방울을 맺게 했고 거칠어진 호흡에 급기야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때마침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가슴을 활짝 열고 긴숨을 들이킨다. 청청(淸淸)하고 신선한 송화(松花)향기가 가슴 깊숙이 밀려온다. 공해와 오염을 잠재워 버린 창조주 하나님의 숨결이며 호흡이 아닐까. 송화(松花) 향기 물씬한 소나무 숲 사이를 거닐며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하나님께서 성산(聖山)으로 인도하신 뜻이 무엇일까 ? 전국 방방곡곡에 수많은 기도원과 수도원이 있건만 이곳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 대다수 목회자는 연초가 되면 목회를 계획하고 기도하기 위해 기도원으로 향한다.
한해의 삶이 주님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듯 목회 현장은 더욱 그러하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 교회와 성도에게 주신 사명을 어떻게 잘 감당하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 '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 라는 결론을 가지고 성령님의 도움심을 요청하러 성산에 오른다. 금번 방문한 기도원은 1960년에 문을 연 이후 오늘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기도원을 찾게 된 연유는 사람의 발걸음이 거의 없어 한적하고 , 조용하여 기도하고 묵상하기에 안성맞춤 이라는 것이다. 마치 숲속에 감춰놓은 보물단지와 같은 곳이다.
더욱이 오늘날 산속에 소재한 기도원마저 이기적인 콘크리트 문화에 동승해 기도도량의 의미를 잃어버린 안타까운 현실을 감안할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기도원은 흙집에 군불을 지피고 가마솥까지 걸쳐놓은 전형적인 구닥다리 기도원이기에 소리 없는 평안이 절로 찾아오는 듯하다. 송화(松花)향기 물신 풍겨옴을 느낀것은 하나님의 예비하신 만남 때문이다. 90평생을 한학(漢學)과 유학(儒學)그리고 시와 문장에 능한 금정산인(金井山人) 목계(牧稧) 이명홍(李明洪) 선생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금정산을 산신령(?) 처럼 오르내리며 백발(白髮)과 수염(鬚髥) 성성한 영감님이다. 금정산인(金井山人)이라는 그의 별호(別號)는 금정산에서 출생해 한평생 산자락을 떠나지 않은데 칭한 유래(由來)를 가지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쩌면 산신령에 방불한 그의 외관 때문이다. 휘날리는 하얀 긴 수염과 시간을 흐름을 알 수 없는 오래된 고무신 현대인에게 거의 찿아 볼 수 없는 선비의 도포와 갓 그리고 큰 부채를 든 모습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별호를 넉넉하게 뒷받침 해주는 것은 뛰어난 글과 문장 그리고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시구들이다. 글은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신명 나는 법 성령충만(聖靈充滿)이라는 평생 가훈(家訓)을 정중히 부탁을 드렸다. 평생 닦은 문장과 학문이 붓과 벼루와 한지의 협연으로 시구(詩句)의 한절한절 읊을 때마다 영감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자연을 노래하며 혹은 인생을 논한 시의 결론 부분에 도달하면 슬픔과 비통 혹은 비애(悲哀)로 끝맺게 되는 공통점을 발견 하게 된다. 전도서 기자의 고백처럼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는 결론처럼 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교회 전도사인 딸의 권면으로 한동안 교회를 다녔으나 설교가 자신의 마음에 감동을 주지 못했다고 하는 아쉬움 때문에 복음과 멀어진 일이다. '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고 하는 솔로몬왕의 인생 결말을 섭렵했다면 그는 구원의 감격과 영광을 찬송하고 감사할 것인데 말이다. 아쉬움을 여운으로 남긴 채 영감님은 하얀 수염과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기도원에서 멀어져 갔다. 구순의 노구에 걸맞지 않게 사푼히 걷는 그의 모습은 신기루 속에 귀인을 만난냥 순식간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마음 가득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과 애절함이 밀려온다.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다 내린 결론은 애써 오른 성산을 거침없이 하산하는 일이다. 자동차에 올라가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는 밤맞도록 어둠을 헤치고 동틀 미명 무렵 교회에 당도했다. 교회 사무실 한켠에는 중국어(中國語)성경책이 자리 잡고 있다. 중국어 성경은 포항남항에 입항하는 중국계 선원들을 만나면 복음을 전하며 선물로 주던 것이다. 한권의 중국어 성경을 집었다. 그리고 밤새 달려온 도로의 희뿌연 안개를 걷어 젖히며 강렬한 햇살을 맞기 까지 힘차게 돌아왔다.
이틀 후 영감님은 진하게 풍겨오는 벼루의 먹내음과 함께 다시 찾아 왔다. ‘성령충만(聖靈充滿)’이라는 힘찬 글을 펼쳐 보이시며 ' 목사님 글이 마음이 들지 모르겠습니다 '. 며 글을 내민다. 참으로 흡족한 글이다. 목례로 연신 감사를 연발하며 밤새 차를 몰며 가져온 중국어 성경책을 내밀었다. 영감님의 얼굴 표정은 신기함과 놀라움으로 대변 되었다. 성경을 펼쳤을 때 글과 문장에 대한 평소의 열망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고 궁금증으로 유발된 거침없는 질문공세로 성경에 대한 새 희망의 열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간자체로 된 생소한 중국어(中國語)에 대한 설명과 중국어 사전 사용법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 인생막차 검게 드리웠던 검은 그림자가 한 꺼풀 한 꺼풀 걷히는 듯하다. 영감님은 소리 없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영감님의 환한 미소를 바라보며 입 안 가득 미소로 답례하고 하산을 서둘렀다.
산모퉁이 끝자락에 도포자락 휘날리며 서계신 영감님의 모습에 예수님이 투영(透映)되길 소망해 본다. 평생 시와 문장으로 노래한 그 천지와 만물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며 아름다운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사실을 깨닫도록 말이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