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사역의 시작은 이주민을 이해하는데 부터 시작합니다. 이주민을 이해한다는 의미는 문화와 언어와 풍습과 습관 가치와 생각 미래비전이 달라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형편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국에 입국한 이주민을 사역은 한국의 문화권 아래 영향을 받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입장에서 그들의 형편에서 사역을 해야합니다.
모 단체와 함께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위로의밤 행사를 가진적이 있었습니다. 지역 기독교 단체인 만큼 , 외국인을 위한 행사의 내용과 프로그램이 다채로웠습니다. 참 흐뭇했고 진심과 정성을 모아 준비한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행사는 단체에 소속한 회원 뿐아니라 가족들도 함께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일은 아직 한국인에게 있어서 외국인의 인식은 이방인의 태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모 회원의 부인이 행사에 동석하고 한눈에 보기에도 많은 외국인을 만난적이 없었던것 같은 느낌이었고 , 더욱이 그들을 향해 툭 던지는 작은 한마디의 말투가 정겨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그 부인은 “아! 외국인이 근로자 이렇게 많으니까 우리 아들이 취직이 안되지” 하며 불평했습니다.
순간 , 부인에게 “그래요!! 그럼, 철강공단에 구라인더나 용접공을 하는데 사람이 없이 일을 못해요!! 아드님 한번 데리고 오세요! 하며 말하자. 부인은 질색을 하며 ”무슨 소리예요!! 우리 아들 구라인더나 용접시킬려고 대학까지 공부시킨줄 아세요!!” 참 마음이 씁쓸했니다.
‘호랑이 가죽은 탐나고 호랑이는 겁나고’ 라는 고사성어가 어렴풋이 생각났습니다. 이주민 사역은 선행적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맞추는 것입니다. 이주민과 눈높이를 맞춘다는 의미는 일방적인 도움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생활전반에 관한 도움을 주되 점진적으로 원조 수혜국 이었던 한국이 국제사회의 중추적 지원국의 역할을 하듯 성장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주민 사역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셨던 사역을 모본 삼아 선행적으로 그들의 어려운 형편을 도우는 것입니다. 노동과 생활전반에 관련한 상담과 인권옹호와 권리수호 의료지원 나아가 문화 복지에 다각도의 지원책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병들고 외면당한 사람들이 예수님께나아와 죄사함 받고 은혜를 경험하면서 믿음의 고백을 하게된 것을 알수 있습니다. 한국땅에 이주한 이주민을 바라보는 시각은 적어도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요셉을 형들앞서 애굽에 보내신 것은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섭리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땅에 입국한 이주민은 성도와 동일한 하늘의 시민이요. 권속이며 하나님나라를 상속받기 위해 이땅에 이주한 하늘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이귀하고 중차대한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들을 통해 복음의 통로로 삼기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맡겨 주셧다는것입니다. 이귀한 축복된 통로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